<간사이 특별기획>

교토 속 또 다른 감성의 교토와 만나다.

바다를 품은 교토, 마이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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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의 천년고도 교토의 북쪽 끝에 자리한 항구도시 마이즈루. 에도시대 당시 타나베성을 중심으로 자리한 성하마을로 출발해 근대에는 무역항구로 번영한 땅이다. 백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붉은벽돌 창고군을 시작으로, 긴키지방 100경에 손꼽히는 고로 스카이타워에서의 바다 절경, 그리고 바다의 교토라는 별칭이 붙은 어항의 고즈넉한 풍경까지. 낯선 이름의 마이즈루에선 익숙한 교토가 아닌 또 다른 감성의 교토가 기다린다.

| 이상직 기자 news@japanpr.com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바다를 품은 교토 마이즈루(舞鶴)가 딱 그렇다. 번잡하고도 익숙한 교토의 역사유산의 흔적을 뒤로하면 고요한 바다의 교토 마이즈루가 펼쳐지니 말이다.


낯선 이름의 마이즈루까지의 여행길도 어렵지 않다. 교토 관광의 중심 JR교토역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1시간 40분을 북으로 달리는데 특급열차의 종점이 목적지 마이즈루이니 열차에서 바다내음이 나길 기다리면 그뿐이다.


마이즈루여행의 시작은 도착역인 JR히가시마이즈루역에서 출발한다. 우리네 동해와 마주한 항구도시이니 명물은 역시나 항구의 풍경. 그중에서도 강렬한 붉은 빛으로 발길을 유혹하는 붉은벽돌 창고군인 아카렌가파크(れんがパーク)가 마이즈루 여행의 첫 즐거움이 된다.


일본의 항구도시마다 붉은 벽돌의 아카렌가가 자리하지만 마이즈루의 아카렌가가 풍기는 정취는 그것들과 다르다. 아카렌가로 유명한 관광지 요코하마와 고베의 아카렌가가 상업에 찌든 돈의 냄새를 풍긴다면, 마이즈루의 아카렌가는 슬픈 전쟁의 역사를 투영하니 말이다.


마이즈루에 아카렌가가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01. 일본이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유신이 있은 지 34년이 지난 후 일본은 아시아대공영을 꿈꾸며 대륙으로의 진출을 준비한다. 그 전초기지가 이곳 마이즈루였던 셈이다.


아카렌가는 이곳에 일본 해군기지인 진수부가 창설되며 본격적으로 하나 둘 지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로 만든 아름다운 창고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창고 안에는 전쟁을 위한 포탄과 물자들로 채워졌는데, 지금도 옛 일본해군이 만든 아카렌가 12동이 남아 당시 전쟁의 역사를 말없이 투영시킨다.


전쟁의 역사를 담은 유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이 백미다. 마이즈루항의 워터프론트를 따라 아카렌가 창고군이 연이어 자리하는데 100년도 넘은 붉은 벽돌이 여전히 그 붉은빛을 잃지 않고 있으니 여행자의 발걸음도 마이즈루 아카렌카 파크 앞에서 빨라진다.


마이즈루 시정기념관이라는 간판을 내건 아카렌가 2호동이 아카렌가 파크로의 관문이 된다. 아카렌가 2호동은 과거 병기창으로 사용되었던 곳. 지금은 1층에는 전시홀이, 2층에는 메이지와 다이쇼, 쇼와에 이르는 일본 근대 격동의 시대를 걸어온 마이즈루시의 역사가 갤러리 스타일로 소개되니 낯선 마이즈루를 이해하는데 더없이 제격이다.


아카렌가 3호동과 아카렌가 4호동의 중간 샛길도 아카렌가 파크의 건축미를 탐미할 수 있어 필수 포인트로 꼽힌다. 3호동과 4호동이 병렬로 나란히 늘어서고 정면에는 비스듬히 아카렌가 5호동이 가로막고 서 있는데, 자로 정렬된 직선과 3호동과 4호동의 지붕선이 만드는 사선이 조합되어 더없이 조화로운 조형미까지 선사한다.

4호동을 지나서는 산책로인 아카렌가 로드도 기다린다. 아직 정비되지 않은 붉은벽돌의 2층 창고 3개동이 일직선으로 늘어서고 메이지 시대 당시의 목제 전봇대까지 곁들여져 150여 미터의 짧은 산책로지만 1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탐미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적지 않다.


마이즈루 아카렌가 파크에서 조금 떨어진 아카렌가 박물관도 그냥 지나쳐선 곤란하다. 아카렌가 1호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아카렌가 박물관은 일본의 현존하는 철골벽돌 건축물로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여 한다. 과거엔 어뢰가 보관된 군수창고였지만 지금은 벽돌건축의 역사를 전하는 박물관으로 변신했고, 작은 벽돌하나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100여 년 전 일본의 건축기술과 건축미를 확인 할 수 있으니 찾지 않으면 후회가 따른다.


100여 년 전, 일본 근대의 맛도 마이즈루 아카렌가 파크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장소는 아카렌가 2호동 내 1층에 자리한 카페 재즈, 메뉴는 니쿠자가카레라이스.


일본의 대표적인 요리로 자리한 니쿠자가(감자소고기조림)는 이곳 마이즈루에서 탄생했다. 1901년 해군기지 진수부의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한 토우고우 헤이하치로가 영국 유학시설에 맛본 비프스튜를 흉내 내 선상식으로 만든 것이 이 니쿠자가의 시작이다.


반찬 등의 일품요리로 내어지는 니쿠자가이지만 마이즈루에서는 덥밥으로 내어진다. 따뜻한 밥 위에 달작지근하게 조린 감자와 소고기가 올려지는데, 100여 년 전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충실하게 재현되니 맛의 울림도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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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라이스도 마찬가지다. 해군 카레라이스로 불리우는데 당시 일본 해군의 레시피 100% 그대로 참조해 완성했다. 감자나 당근 등의 건더기가 없으며, 익숙한 카레보다 묽게 만들어 첫인상이 화려하진 않지만 매운 맛이 덜하고 카레와 밀가루를 함께 볶아만든 일본 카페의 원형을 완벽히 재현했으니 100여 년 전 카레의 맛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맛볼 가치는 충분하다.

 


긴키 100경 중 No.1 고로스카이타워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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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렌가의 정취에 한 없이 취해있을 겨를이 없다. 마이즈루가 자랑하는 절경의 포인트인 고로스카이타워가 기다리니 말이다. 마이즈루의 거의 정 중앙에 자리한 표고 301m의 고로가다케 산. 이 산 정상에 높이 50m의 거대한 전망타워가 자리하는데, 간사이권역 전체를 아우르는 긴키지방 100경 중 최고라 불리우는 절경을 이곳 고로스카이타워(五老スカイタワー)에서 만날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자 역시나 360도의 대파노라마가 감탄사부터 부른다. 위에서 아래로는 바다와 하늘이 만나 서로를 품고, 아름답게 펼쳐진 리아스식 해안은 수평으로 늘어서며 동해로 문을 연 마이즈루항과 마이즈루 시내를 그림처럼 펼쳐보인다. 지형도 백미다. 마치 어미가 자식을 두 손으로 끌어안은 듯, 산세가 마이즈루를 포근히 감싸않는다


바다는 어미 품에 안긴 아이마냥 고요하다. 흔한 파도조차 없이 하늘과 마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보는 이의 마음을 한 없이 편안하게 만드니 힐링이라는 단어 외에는 따로 이 절경을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긴키 100경 중 제일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으니 마이즈루를 찾는다면 필히 코스에 넣어봄직하다.


고로스카이타워가 하늘 위에서 마이즈루를 즐기는 방법이라면 마이즈루항유람선은 바다 위에서 마이즈루를 만끽할 수 있어 인기다. 유람선은 마이즈루 아카렌가 파크 바로 옆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마이즈루만 내해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마이즈루항만을 따라 돌아나오는 일주코스인데 과거 해군기지이자 조선업으로 번성했던 마이즈루항의 모습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어 꽤나 흥미롭다


해상자위대 헬리콥터기지를 필두로 1904년과 1914년에 완공한 제2, 3도크, 그리고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의 거대한 위용도 유람선 위에서 몸소 체험할 수 있어 각별하다. 유람선 승선요금은 1천엔으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 한해 4편이 운행(~1130일까지)된다.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에 오를 수 있는 특별한 경험도 기다린다. 매주 토, 일요일 및 공휴일에 한정해 아카렌가 파크 바로 옆 자위대산바시를 찾으면 정박중인 이지스함에 누구든 올라 박력 넘치는 호위함의 면면을 둘러볼 수 있으니 군함마니아들이라면 욕심내볼만하다.

 


바다 품은 교토를 걷다. 성하마을 요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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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부에 속한 마이즈루인 만큼 교토다운 정취도 곳곳에 살아 숨 쉰다. JR니시마이즈루역에서 가까운 성하마을 요시하라(吉原)바다의 교토라는 별칭으로 추앙받는 이채롭고도 예스러운 마을이 자리해 산책코스로 제격이다.


마을은 어항과 운하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어촌마을인데 교토부 내에 자리하는 단편적인 이유 때문에 바다의 교토라는 별칭이 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과거 에도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마을의 형태가 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에 교토의 전통거리에 비견된다하여 붙여진 칭호다.


마을의 형태는 바둑판 모양으로 규칙적으로 재단된 교토의 거리와 다를 바 없다. 남북으로 세 갈래의 길이 직선으로 관통하고 중앙에는 어촌마을임을 고려해 운하형태의 수로를 개착하여 고기잡이배들의 이동로로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에도시대 당시에 만든 그 형태가 지금까지 변질되지 않고 남아 있으니 바다의 교토라는 별칭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요시하라의 마을어귀 어디라도 걷기 좋지만 절경의 워킹포인트를 꼽자면 니시요시하라의 야마토바시 다리 부근이다. 다리 아래로 운하가 흐르고 운하의 좌우로는 후나야(舟屋)라고 불리우는 전통의 해상가옥이 수 십여채가 줄을 이어 자리하는데, 후나야로 조성된 어촌마을의 원형이 그대로 보전되는 곳은 이곳 마이즈루 요시하라가 유일하니 풍경의 값어치가 만만치 않다. 워낙 귀한 풍경이기에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도 인기다. 요시하라의 야마토바시 다리를 무대로 촬영된 작품만도 십 여편을 넘을 정도다.


운하를 중심으로한 요시하라의 풍경도 일품이지만 디테일도 챙겨볼 일이다. 바로, 후나야만의 재미있는 건축기법이다. 집 한 켠에 작은 어선 한 척이 들어갈 주차장격의 필로티식의 공간이 마련되는데 배위에서 직접 집안 거실로 들어갈 수 있는 후나야만의 독특한 구조다. 지금은 어선을 정박하는 별도의 시설이 마련되어 사용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후나야에서 이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지나치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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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마을에 왔으니 신선한 해산물요리가 빠지면 섭섭하다. 성하마을 요시하라 거리에서 멀지 않은 175번 국도변에 수산시장 토레토레센터(とれとれセンター)가 자리하니 줄인 배를 채우기 제격이다.

토레토레센터는 매력은 무엇보다 신선한 해산물요리를 시장도매가격으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 요리는 먹는 방식도 특이하다. 토레토레센터 안을 가득채운 여러 상점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생선회를 골라 먹거나 생물 생선을 구입하면 즉석에서 생선구이로 만들어 준다


가격도 파격적이다. 마이즈루항 연안에서 잡힌 자연산 모듬회는 1인분 한 접시가 500엔부터 시작되고 어른 팔뚝만한 큼직한 자연선 농어는 800, 구이용으로 더없이 맛이 좋은 자연산 방어도 1300엔에 맛볼 수 있다. 시장 한 켠에는 식사용 테이블도 마련되니 일본 수산시장만의 운치까지 덤으로 맛볼 수 있다. 고급 어묵의 일종인 가마보코도 명물이다. 맛으로는 일본 제일이니 마이즈루 여행의 기념품을 챙긴다면 좋은 선택이 된다.

 


우키시마마루 추모비, 전쟁의 상처를 보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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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가슴 아픈 역사도 마이즈루에 서려있다. 우키시마마루 폭침사건이다. 1945815일 연합군에 항복선언을 하고 패전한 일본은 아오모리현에서 수 천여 명의 한국인 징용자들을 배에 태워 부산항으로의 송환에 나선다. 하지만 배는 824일 오후 520분 경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침몰하고 만다.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하며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에 그리던 이들은 결국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억울하게도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수 많은 이들이 생을 마감한다.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도 여자와 아이를 포함해 524명이었다. 우키시마마루 폭침사건에는 여러 설들이 있다.


미해군이 설치한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했다는 설에 더해 일본군이 자폭을 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키시마마루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당시 마이즈루의 사람들은 그들이 조선 징용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의 구조에 나섰다. 어부들은 고기잡이배를 타고 목숨을 담보로 침몰하는 우키시마마루호에 뛰어들어 귀중한 생명들을 구했다.


취재에 동행한 마이즈루관광협회의 겐비시 히데아키 본부장은 이곳 마이즈루 사람들도 전쟁의 피해자들이라고 했다.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 끌려 나갔고, 일본이 패망하자 이들도 자신의 아들과 아버지가 무사히 귀향하길 기다렸으니까요. 아마도 동병상련의 심정이었겠지요라며 긴 한숨을 내쉰다.

우키시마마루 폭침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는 일본인들에 의해 마이즈루시 우키시마마루호 침몰 현장 인근 해안도로 한쪽에 지난 1978년 마련되었다.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세상을 떠난 아이를 안은 채 배가 가라앉은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상의 슬픈 눈이 마이즈루라는 이름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긴다.

 

<여행정보>
마이즈루까지는 JR교토역에서 특급 마이즈루호를 타고 종점인 히가시마이즈루역에서 하자차면 된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40. 교토까지는 관문 간사이국제공항에서는 JR특급 하루카를 이용하면 환승 없이 찾을 수 있으며, JR이 판매하는 간사이 와이드 레일패스 4일권(7000)을 이용하면 교토는 물론 마이즈루까지 특급열차를 포함한 모든 열차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마이즈루 내에 다수의 호텔이 자리해 숙박도 편리하며 마이즈루시 최대 호텔인 호텔 마레 타카타(www.h-mare.co.jp)와 전통료칸형 호텔 요시다(www.hotel-yoshida.com)가 쾌적한 교통과 시설로 추천할만하다. | www.maizuru-kanko.net

취재협조 : 마이즈루시청 관광산업과, 마이즈루관광협회, JR서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