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고, 일본엔 시코쿠 순례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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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를 이루는 네 개의 주요 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 시코쿠에 1,200km의 아름다운 길이 있다. 바다와 산을 끼고 88개의 사찰을 도는 1,200년 된 길이 그것이다. 
이 시코쿠 순례길을 여섯 번씩이나 걸은 여자가 있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운영하던 가게도 망해버렸다.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빌려준 지인은 어느 날 사라졌고, 지극정성을 다했던 남자친구에게는 배신까지 당했다. 연이은 불행으로 좋아하던 운동도 하지 않고, 허기진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느라 체중은 고도비만에 가까워졌다. 우울증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자리 잡을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시코쿠 순례길. 온몸으로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20kg의 배낭을 메고 45일 동안 걸었다. 이 순례여행이 저자인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이고, 그 결과물이 이 책 <시코쿠를 걷는 여자>이다. 
책 <시코쿠를 걷는 여자>는 시코쿠의 순례길을 시코쿠 내의 4개 지역에 따라 4개의 장으로 나누어 따라간다. 첫 순례길이 된 설레이는 도쿠시마의 길을 이야기하는 1장을 시작으로, 묵묵히 걷고 또 걸으며 수행을 이야기한 고치현, 자신을 돌아보고 저자 스스로 본인에게 더욱 더 가까이 간 깨달음을 선사하는 에히메, 그리고 순레길을 통해 드디어 찾은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야기인 4장 가가와현까지, 시코쿠의 4개 지역을 아우르는 진정한 순례길 순례기를 담아냈다. 
책에는 순례자에게 차나 음식, 잠자리까지 제공하는 시코쿠만의 아름다운 전통인 ‘오셋다이’ 등, 시코쿠 순례길의 문화적 정서가 눈길을 끈다. 저자는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순례자 복장인 흰 옷을 선물받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과 음료, 숙소를 제공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목욕 오셋다이를 받고, 차를 태워주는 사람도 만났다고 전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순례자를 보면 반드시 오셋다이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어. 그건 이 섬의 오랜 전통이야. 그러니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어”라며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천 엔을 건네며 저자에게 했던 말은 시코쿠 오헨로(순례자)들에게 베푸는 오셋다이(접대)라는 아름다운 전통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고도 남는다. 
책속에서는 동행이인, 즉 혼자이면서 함께인 시코쿠 순례길을 여섯 번이나 걸으며 길의 일부가 된 여자의 에피소드도 진중하게 담긴다. 
저자는 “길에서 만난 오헨로들은 동행이 되기도 하고, 숙소에 함께 머물기도 하며 우정을 나눈다. 길 위의 ‘동행이인(同行二人)’ 표식처럼 그 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덕분일까. 차츰 저자인 그녀는 우울증이 치유되고, 시코쿠의 순례길을 걸을수록 긍정의 마음을 되찾아감에 독자들의 공감도 이곳에게 절정에 달한다. 
책 <시코쿠를 걷는 여자>의 저자 최상희의 약력도 책의 가치를 더하는 대목이다. 시코쿠 88개소 여섯 번, 시코쿠 번외사찰 20개소 네 번, 쇼도시마 88개소 한 번 결원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7년차 오헨로상이 바로 저자 최상희다. 
지금은 시코쿠 순례길의 활동가를 자처한다. 도쿠시마의 오래된 옛길을 복원하는 작업과 고치현의 츠키야마진자 루트 순례표지판 설치작업에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외국인 여성 최초로 공인센다츠(순례길안내자) 자격증을 받았다. 2014년에는 89개의 헨로코야(순례자쉼터) 프로젝트에 동참하여 한국, 일본, 영국의 기부금을 모아 70번 절과 71번 절 사이에 한일 우정의 헨로코야를 건설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시코쿠 순례길을 주제로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시코쿠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돕고 있을 정도다. 
자신의 치유를 위해 시작한 순례길에서 자아를 찾고, 순례길의 달인이 되고, 단순히 걷는 순례자가 아닌 시코쿠 순례길을 알리는 활동가로 변신할 만큼 시코쿠의 순례길이 특별한 걸까. 그 답은 이 책 <시코쿠를 걷는 여자>에 틀림없이 담겨있으니 그 속이 궁금한 이라며, 더불어 시코쿠 순례길을 점찍어둔 여행자라면, 그 순례길 여행의 바이블로 이 책이 더 없는 선택이 될법하다. / 최상희 저 | 푸른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