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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오산에서 후지산 보고 온천즐기고, 여기 도쿄 맞아?”

최신 트랜드의 패션과 번화한 거리의 쇼핑몰들. 항상 새로운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는 도쿄는 자극적이지만 힐링을 찾는 가족여행의 목적지로는 조금은 피곤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쿄 중심가 신주쿠역에서 서쪽으로 전철로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다카오산’ 주변에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조용한 도쿄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를 가든지 관광객으로 넘치는 도심과 달리 유유자적 트레킹과 온천에 더해 건강한 사찰음식까지 즐길 수 있으니 도쿄의 새로운 맛을 기대하는 이들이라면 더없는 선택이 된다. 
도쿄 | 오나리 나오코 기자

신주쿠역에서 도쿄 도심의 전철노선으로는 그 이름이 낯선 게이오전철을 타고 약 40분을 달린다. 초반 고층빌딩과 화려한 거리의 풍경은 잠시 후 초록의 산세로 바뀌어감에 내가 아는 도쿄와는 또 다른 도쿄임을 직감한다. 
게이오전철이 도착한 곳은 게이오선 다카오산구치(高尾山口)역. 다카오산구치역 앞으로 등산로가 이어진 다카오산은 도쿄인들이 부담 없이 주말을 즐기는 트레킹 장소로 유명한 명소. 다카오산구치역도 지난 해 4월에 완성해 풋풋함이 기분좋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목적은 트레킹이지만 다카오산구치역도 볼거리니 지나치면 아쉽다. 명산 다카오산에 자리한 역인만큼 주변 자연과 어울리는 삼나무를 이용해 외부가 마감되어 모던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건축미를 뽐내니 말이다. 참고로 일본 내 유명 건축가인 쿠마 켄고의 작품이다. 
역을 빠져나오면 여기가 정말 도쿄일까라는 생각이들 정도로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길과 숲뿐이다. 반가운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탓일까 외국인관광객의 발걸음도 없다. 나 혼자 도쿄의 명소를 앞서 독식했다는 감정에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간다. 
등산로를 따라 산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도중에 <TAKAO 599 뮤지엄>이 보인다. 다카오산의 자연과 역사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뮤지엄의 이름은 다카오산의 높이가 599m인 점에 착안해 붙여졌다. 흰색 벽체의 공간에는 다카오산 관내의 자연이 알기 쉽게 전시되어있다. 벽체 일면에 멧돼지와 일본 원숭이, 날다람쥐 등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 다카오산에 사는 동물들이다. 벽을 배경으로는 다카오산의 사계절을 알 수 있는 프로젝션 매핑(투시영사)도 상영되니 필히 볼만하다. 
뮤지엄을 뒤로하고 본격적안 다카오산 정상으로 속도를 낸다. 정상으로 가는 루트는 6개나 된다. 산 아래에서 정상 599m까지 걸어 오르는 등산코스와 케이블카나 리프트를 이용해 472m 부근까지 올라가 정상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코스들이 마련된다. 
어느 루트를 선택해도 약 1시간 3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지만 이 날은 봄날을 맞아 다카오산을 찾은 인근 유치원 아이들의 소풍행렬에 편승해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케이블카(등산열차)의 즐거움이 각별하다. 다카오산의 케이블카 경사도는 일본 제일을 자랑한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듯 아찔한 경사를 오를 때마다 동승한 유치원아이들 마냥 비명과 웃음이 터지니 어른들까지 동심으로 돌아가는 마법도 다카오산만의 소박한 즐거움이다.    
다카오산을 오르면서 소소한 그저 그런 볼거리의 관광지로 여겨선 곤란하다. 사실 다카오산은 연간 등산객 수가 약 260만 명을 넘어 세계 제일의 등산객수를 자랑하는 명산이다.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에서 가까운 점도 주요하지만 도쿄의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자연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점이 진짜 포인트다. 세계적 권위의 여행품평서인 프랑스 미슐랭가이드에 다카오산은 세계문화유산 후지산과 마찬가지로 별 3개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이니 목적지 다카오산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은 진즉에 떨쳐두어도 좋다.  
케이블카에 내려서부터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흙길의 등산로인 4번 등산로로 향한다. 다카오산 특유의 전나무, 삼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서고 깊은 산에 어울리는 아찔한 현수교도 자리하니 여행자의 감각은 깊은 산을 오름과 다름이 없다. 
흙길의 끝에는 다시 가지런히 포장된 길이 나온다. 포장로 너머로 도쿄의 높은 빌딩과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면 다카오산 정상 599m에 다다른 셈이다.   
정상은 역시나 감동이 각별하다. 정상의 넓은 공지 한 켠에는 전망대도 마련되는데, 도쿄타워나 도쿄스카이트리의 공중전망대에서 만나는 도쿄의 풍경과는 또 다른 감동이다. 
다카오산 정상의 하이라이트는 또 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후지산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날씨가 맑게 갠 날이면 전망대 서편으로 머리 위 새하얀 잔설을 뽐내는 항상 그려왔던 웅장한 후지산이 턱 하니 자리하니 참았던 감탄사도 여기에서 터진다. 

영산(靈山)의 기운 채우고, 불교 쇼진요리로 미각도 챙겨 
다카오산 정상에 올랐다고 다카오산을 다 즐겨다 생각해선 곤란하다. 영산의 기운과 일본의 전통적 산사(山寺) 문화의 백미가 기다리니 말이다. 명소는 사찰 야쿠오인(薬王院). 정상에서 오모테산도코스라 이름 붙여진 1번 등산로 중턱에 자리한 사찰이다. 
현재 다카오산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산이지만, 과거엔 영산으로 일컬어져 승려들이 수행하는 도장이었다. 때문에 당시의 역사를 전하는 산사들이 다카오산을 즐기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등산로 한 켠에서 붉은 얼굴에 긴 코를 가진 상상속 괴물인 텐구(天狗)의 동상들이 보인다면 야쿠오인 도착이다. 야쿠오인은 744년 다카오산 중턱에 개창한 불교사원으로, 다카오산의 성스러운 공간으로 통한다. 사원 내에 신사도 자리해 소원을 비는 참배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산사의 가람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왕 야쿠오인을 찾았다면 수도승들이 먹는 사찰음식인 쇼진요리를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국의 사찰음식과 마찬가지로 고기와 생선, 계란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음식으로 채소만을 사용해 정갈한 일본요리를 표현해내 입으로는 물론 눈으로도 즐거운 체험이 된다. 
조용한 독방에 한사람씩 준비된 밥상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일본요리답게 먹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요리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언뜻 보기에 메뉴는 생선회, 소시지, 고기만두 등으로 보인다. 외국인여행객이라 특별히 고기나 생선을 포함한 사찰의 특별한 배려인가하고 음식을 입에 가져가니 참치회는 토마토로, 소시지는 콩을 훈제하여, 만두도 속을 모두 채소로 만들어 유쾌한 배신감을 전한다. 
맛도 일품이다. 사찰요리이기에 맛을 포기해야하지 않을까 염려하지만 조화로운 한상차림이 여는 고급 온천료칸의 가이세키 못지않은 감동을 전하니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 

트레킹 후의 몸은 극락온천의 온천수로 치유해 볼까
오감으로 다카오산의 매력을 즐기고 이대로 도쿄 도심으로 돌아가기 아쉽다면? 다카오산구치역에 이웃하여 자리한 온천시설인 고쿠라쿠노유(極楽の湯)가 있어 반갑다. 
고쿠라쿠노유는 다카오산 기슭에서 솟아나는 천연온천을 즐길 수 있는 시설. 지난 해 10월 오픈해 다카오산의 신명소로 인기인 곳이다. 관내에는 남녀로 나뉜 온천탕과 다카오산의 명물인 메밀국수 등을 즐길 수 있는 식사 공간과 마사지실, 휴게실 등으로 구성되니 작은 온천테마파크를 즐기는 감각 그대로다. 
실내 욕탕으로 시선을 옮기자 기대치보다 못한 작은 실내가 등장한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실외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니 다카오산의 하늘을 품은 다양한 노천탕이 가득 늘어서니 말이다. 노송나무탕을 비롯해 인공탄산이긴 하지만 흔치 않은 탄산수온천, 그리고 별도의 가수(加水)과정 없이 천연온천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전통의 겐센카케나가시 방식의 노천탕도 있으니 트레킹의 피로를 풀기에 더없이 제격이다. 
고쿠라쿠노유에서라면 한껏 시간 여유를 부려도 좋다. 역과 바로 이웃하여 자리하고 승차홈까지 도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시설 내에 열차 출도착정보를 안내하는 안내판까지 마련된다. 
고쿠라쿠노유를 즐기지 않더라도 트레킹 후의 즐길거리는 아직도 풍성하다. 산 중턱에 원숭이공원이 자리하고, 착시를 이용한 미술체험을 선사하는 트릭아트미술관도 역 주변에 있으니 기억해 둘만하다. 

도쿄 명소 아사쿠사서 400년 전 에도시대의 맛과 멋 즐겨
다카오산을 무대로한 유니크한 도쿄여행도 좋지만 도쿄 도심의 명소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추천명소는 도쿄역에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아사쿠사다. 아사쿠사는 400년 전 도쿄가 ‘에도’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당시의 감성이 살아 숨쉬는 전통테마의 명소다. 
즐길거리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명소인 센소우지절을 필두로 경내에 만들어진 상점가인 나카미세에서의 쇼핑에 더해 기모노를 빌려 거리에 산책하거나 인력거를 타고 색다른 시티투어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니 취향따라 고르면 그뿐이다. 
‘맛’도 아사쿠사에서라면 각별하다. 도쿄의 중심부를 흐르는 스미다가와강의 민물장어를 잡아 200년 이상 장어집을 이어오고 있는 ‘마에카와(前川|www.unagi-maekawa.com)’는 200여 년 전 에도의 맛을 즐길 수 있어 미식가라면 욕심내볼만하다. 
가게의 각 객실은 도도하게 흐르는 스미다가와강과 그 건너편으로 도쿄의 마천루가 된 도쿄스카이트리가 얼굴을 내민다. 감상은 각별하기 그지없다. 한 쪽은 400년 전 에도의 풍정, 다른 한 쪽에서는 하늘로 솟은 거대 타워가 뽐내는 근미래적 도쿄가 마주하는 경계에서 즐기는 식도락이니 요리에 앞서 그 분위기에 먼저 취하고 만다.  
마에카와의 7대째인 점주 오오하시 가즈마씨는 “200년 전 장어는 서민들의 영양을 채우는 저렴한 음식이었다”며, “살아있는 장어를 직접 손질하는데 장어가 통증을 느끼면 장어 본래의 탄력과 맛이 옅어지므로 20초 안에 손질해 요리하는 것이 마에카와만의 전통”이라고 전했다. 
손질한 장어는 마에카와 창업 당시부터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타레(양념장)를 듬뿍 발라 구워서 내어진다. 막 구워낸 장어는 달콤한 타레의 향까지 더해져 식욕을 자극하고, 장어구이 아래의 흰밥을 장어와 함께 떼어내어 입으로 가져가면 입안에서 사르는 녹는 마법을 부리니 2700엔부터 시작하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 결코 아깝지 않다. 
요리를 즐겼으니 술도 빠질리 없다. 명소는 일본 전국의 전통주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그랜드사케마켓’(kurand.jp/sakemarket). 각 지방에서 소량 생산되고 지역 주민들 밖에 모르는 맛있는 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든 특별한 사케체험시설이다.  
점내에는 역시나 가득한 술병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한쪽 벽의 냉장고에는 전국 각지의 술이 100종류 이상 줄지어 줄 지어 늘어선다.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입장 시 1인 당 3,000을 지불하면 당일 폐점 시까지 자유롭게 일본 전국의 명주를 맛볼 수 있다. 단. 술을 많이 마시기 위한 시설이 아닌 다양한 술을 만날 수 있는 체험시설인 만큼 앉아서 마실 의자는 없다. 시설 내 곳곳에서 걸음을 옮기며 술을 즐길 수 있고, 간단한 안주는 손님이 밖에서 사오거나 점내에서 판매하는 것을 이용해도 무방하니 마이스타일의 일본 사케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겐 필히 도쿄여행 코스에 넣어봄직하다. 

<여행정보>
다카오산까지는 신주쿠에서 게이오전철을 이용하면 된다. 게이오전철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게이오선 및 이노가시라선 각역에서 다카오산구치역까지의 왕복승차권과 다카오산 케이블카 승차권을 세트한 ‘다카오산킷푸’가 판매중에 있어 통상 운임대비 20% 저렴하게 다카오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다카오산 트레킹의 보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다카오산 공식사이트(www.takaotozan.co.jp)에서 확인할 수 있다. 
●취재협조 : 도쿄관광재단(www.tcvb.or.jp)․ANA전일본공수(www.ana.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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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다카오산 정상을 향하는 케이블카(등산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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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 신성한 자태의 야쿠오인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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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 구름다리의 운치가 반기는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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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 다카오산온천 고쿠라쿠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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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 전통주를 즐기는 그랜드사케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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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 200년 역사의 마에카와의 장어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