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Tour>나가사키 순례기, 아름다운 침묵

서울에서 3시간, 그곳에 동양의 로마가 있다. 

 

박정배 저 | 돋을새김
정가 11,000원

 

보통 순례 여행이라고 하면 기독교의 발상지인 이스라엘, 혹은 가톨릭 문화가 꽃피었던 유럽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 그것도 서울에서 3시간 남짓한 가까운 거리에 ‘로마’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짬뽕의 발상지, 혹은 원폭 투하지로 유명한 나가사키가 바로 그곳이다.
나가사키는 일본에 가톨릭이 처음으로 전파된 곳이자 3백 년에 걸친 종교 박해가 있었던 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순례를 위해 방문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나가사키에는 수십 개의 교회들이 아름다운 바다와 그곳에 점점이 박힌 섬들을 배경으로 꽃처럼 피어 있다. 그 교회들과 곳곳에 퍼져 있는 순교지로 인해 나가사키는 ‘동양의 로마’라고 불리는 것이다.
세계적인 작가이자 수많은 명작을 남긴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 역시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현재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기도 한 이 작품에서 엔도 슈사쿠는 나가사키에 남겨진 상처와 고통의 역사를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감싸 안는다. 수백 년에 걸친 고통,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 곳, 그래서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 바로 나가사키이다.
순례지라고 해서 나가사키에 교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에도시대부터 일본 유일의 개항지로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온 나가사키는 순례가 목적이 아닌 여행자라도 반드시 방문해봐야 할 만큼 매력적이다. 나가사키의 중심지이자 개항지의 이국적인 정취 속에 원폭 투하의 아픔을 감추고 있는 나가사키시를 비롯하여, <침묵>의 무대로서 엔도 슈사쿠가 남긴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 소토메, 햄버거의 발상지이기도 한 사세보, 외국 문물을 받아들여 다채로운 문화가 발달했던 구치노쓰항구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시마바라반도 등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순례기를 표방하는 <아름다운 침묵>은 여행 칼럼니스트이자 일본 여행 전문가인 저자가 나가사키를 직접 보고 느끼며 그 내용을 채웠다. 여행에는 전문가지만 순례에는 서투른 그를 따라 걷다 보면 나가사키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곳의 역사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자는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세심하게 교회를 묘사하면서 그 속에 녹아 있는 역사를 조심스럽게 풀어나간다. 그리고 나가사키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시선도 잊지 않는다. 저자의 섬세한 문장 속에서 나가사키는 낯선 땅이 아닌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친근한 땅으로 탈바꿈한다.
나가사키시부터 고토열도와 히라도, 이키쓰키를 지나 오무라와 시마바라반도까지. 그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나가사키의 역사도 함께 만날 수 있다. 1549년 일본 가톨릭의 시작, 그와 함께 시작된 3백 년간의 박해, 마침내 찾아온 종교의 자유, 그리고 전쟁. 이 복잡한 역사의 흔적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는 나가사키의 교회에 남아 있다. 한 발짝 다가서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힘든 그 흔적들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싹처럼 피어난 ‘희망’이라는 치유의 징조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각 지역별 주요 순례지에 대한 지도와 정보 및 교회를 방문할 때의 매너 등, 나가사키를 여행하면서 체득한 유용한 정보들을 정리하여 나가사키를 처음 방문하거나 일본어가 서툰 독자들도 나가사키를 부담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한 배려도 반가운 부분이다.
<아름다운 침묵>은 아직 나가사키를 방문하지 못한 독자는 물론, 이미 방문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가사키의 새로운 매력을 알려주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일본관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기사입력:2009.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