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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로 다시 채운 열두 가지 일본이야기


 [빨간벽돌창고와 노란전차]
강동진 | 비온후 출판
정가 : 9,800원


버려진 것들과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지켜지고 있는 일본의 모습. 어쩌면 일본이 가진 문화적 특징의 대표적인 부분 중 하나다. 모두들 오래되고 잊혀져가는 것에 무감각해지고 새롭고 감각적인 것에 치중하는 이 시대에 한 건축가가 건축가의 눈을 통해 일본의 도시문화에 대한 소박한 접근을 시도한다. 


이 책은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여행서는 아니다. 건축전문 출판사의 출판물일 만큼,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버려진 것들과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재활용해서 다시 회복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일본의 도시이야기이자 건축가들의 시선을 통해 본 현대 일본속의 건축이야기이다.


‘도시만들기’라는 테마에 관심을 가진 저자 강동진 교수는 일본각지의 산업유산과 지역자산에 주목한다. 저자의 “하찮아 보이는 것도 다시 보거나 뒤집어 생각하면 소중한 도시의 자산이 된다”는 책의 머리말처럼 이 책은 옛것을 지켜내고 옛것을 통해 더 큰 도시의 자산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도시를 우리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한다.
책은 일본의 도시를 크게 건물·마을·항구·길의 4가지로 나누어 과거의 역사이자 유산을 간직한 10여개 도시를 선택, 저자만이 가능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일본의 맥주역사를 대변하며 과거 맥주공장으로서 이용되었던 삿포로의 ‘삿포로맥주공장’을 찾아 이제는 시민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또 타 지역으로부터의 관광객들로부터 꼭 방문하고 싶은 관광명소로 사랑받는 공장의 재활용에 대해 털어놓으며 일본의 도시를 바라보는 저자의 학문적 관점이지만 어렵지 않는 작가적 시점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구라시키시(오카야마현 소재)의 전통미관지구로 지정된 ‘구라시키’도 마찬가지다. 


350년 전, 일본의 에도시대 당시의 덴료(天領:막부의 직할 영지)로서 번성한 구라시키 당시의 모습이 보전·보호되어 문화유산으로서는 물론 과거의 산물이 어떻게 재생산되어 또 다른 가치를 만드는가에 대해 구라시키를 통해 그 답을 찾고 있다. 방적공장이 분위기 있는 호텔로서 태어나고 잔해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옛스런 벽돌길이 현대건축이 표현해내지 못한 복잡 다양한 맛을 만들어냄에 글을 읽는 독자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항구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개항장이었던 오타루와 하코다테, 요코하마의 항구도시의 상징처럼 자리한 빨간벽돌(아카렌가)의 창고가 예전의 단순한 창고건물로서가 아닌 새로운 도시와 가치를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겉모습은 예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안으로는 현대의 트렌드를 대변하는 목적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일본의 산업유산을 통한 도시만들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어내야할지를 역설한다.
생산된 지 족히 50년은 넘었을듯한 레트로풍의 고풍스런 노면전차가 시내 중심가를 달리며 90년 전과 다르지 않은 도시미관으로 일본의 유명관광지로서 이름을 떨치는 나가사키와 하코다테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작가의 학자적 관점 역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단순히 여행리포터가 한두 번 여행해보고 얕은 지식으로 만든 추측성 감상이 아닌 건축가로서의 시점, 그리고 10여 년간의 오랜 연구와 답사를 통해 도시와 건물의 역사와 가치, 그리고 현재의 의미 등에 대해 논하고 있는 만큼, 타 여행서에서 만족할 수 없었던 정보부족의 아쉬움도 달랠 수 있다. 더불어, 각 페이지마다 마치 그 장소에 내가 있는 듯 착각할 만큼 큼직한 사진과 편집역시 저자의 글에 힘을 더하고 있는 부분이다.  


단순한 여행서로서도, 그렇다고 전문 학술서도 아니지만, 그 어는 자리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볼거리와 읽을거리는 모호한 경계에 서있어도 이 책을 선택하게 하는 매력이다. 먹거리와 일상다반사적인 볼거리에 집작하지 않고 도시 그 자체를 느끼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일본의 도시에 대한 식견을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