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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취미를 적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여전히 망설이지 않고 ‘영화감상’이라고 채워 넣을 만큼 지독하게 영화를 사랑하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자유여행가, 여행사진가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소개하지만 지나온 이력은 남다르다. KBS 공채 PD로 입사한 뒤, 이후 수많은 라디오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작사가, 음반제작자로도 일했다.
영화만큼이나 그가 좋아하는 건 여행이다. 2년여 동안 동남아 5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담은 <별이 쏟아지는 동남아로 가요>의 저자이기도 한 그가 이번에는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영화를 사랑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행지였다.
<눈물이 주룩주룩> <안경> <아오이 유우의 편지> 등의 영화를 찍은 아열대 섬으로 일본 본토와 또 다른 이국적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섬 오키나와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 오키나와는 영화를 사랑하고 일본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다녀와야 하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 ‘영화의 섬 오키나와. 오키나와 영화 특별전’이 개최되었을 정도로 오키나와는 말 그대로 영화의 섬이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3개월에 걸친 전투 끝에 주민 9만 4천여 명이 사망했고 이후 27년간 미군에 의해 군정 통치를 받았다. 그래서일까.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역사를 다룬 영화도 있다.
<호텔 하이비스커스>기 대표적이다. 제목을 봐서는 꽤 낭만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미군 접대부 출신인 엄마를 중심으로 반 백수 아버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작은딸 미에코, 흑인 혼혈인 권투선수 지망의 아들 켄지, 백인 혼혈인 큰딸 사치코. 한 명의 일본인 엄마와 백인, 흑인, 일본인의 각기 다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딸들이 등장하며 인종 문제 외에도 오키나와주둔 미군과의 갈등 같은 미묘한 소재를 유쾌하게 다룬다.
이 영화의 무대는 오키나와 나고시(名護市) 헤노코(辺野古)다. 나고시에는 여전히 촬영당시의 하이비스커스 호텔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영화에 등장했던 거리가 여전히 반기니 영화팬인 저자의 반가움과 흥분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 <안경>의 촬영지였던 테라자키 비치에선 저자의 감흥이 최고조에 이른다. 저자는 머릿속으로 메르시 체조 때 흘러나오던 반주 음악을 떠올리며 모타이 마사코가 부르르 몸을 떨던 춤 동작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오키나와 전통복장을 차려입고 언덕길을 내려오는 앳된 소녀들을 바라보며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서 요타루가 여동생 카오루의 성인식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오키나와 전통복장을 떠오리면 감상에 젖는다.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함께 저자는 꼼꼼한 기억력으로 오키나와 여행 일지도 세밀하게 기록하니 영화팬이라면 이 책 한 권만 들고 떠나면 굳이 여행지에서 따로 지도를 사지 않아도 될듯하다. 더불어 책을 펼쳐 들고 저자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더없이 완벽한 오키나와 영화여행이 되니 도리어 다른 정보가 방해가 될 정도다.
책에는 총 일주일간의 오카나와 여정이 담겨있다. 영화 <안경>의 무대인 요론지마, 낭만적 항구도시 이시가키, <니라이카나이로부터 온 편지>의 배경이 된 다케토미, 그리고 하토마지마와 오키나와 가장 끝에 자리한 요나구니지마까지 ‘영화의 무대 오키나와’를 테마로 코스가 줄을 이으니 올 겨울 ‘리조트 오키나와’가 아닌 ‘영화의 섬 오키나와’를 맛보고픈 이들이라면 이 책 <오키나와에서 일주일을>이 좋은 바이블가 될 것이다. / 윤정수 저 | 가쎄

 

ⓒ일본관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기사입력:201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