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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나 고베 같은 큰 도시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그런 큰 도시의 인상은 어디나 비슷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저자에게 일본은 그저 만화의 나라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일본에서 열린 바이크 레이스를 구경하러 갔다가 만난 시골마을은 단번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카무이전(カムイ傳)으로 유명한 시라토 산페이의 작품 속에서나 보았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는 결심한다. 바이크로 떠나는 일본 일주를 말이다.
일본 지도를 챙겨 들고 부산항에서 부관페리를 타고 시모노세키에 도착하며 그의 여정은 시작된다. 30박 31일 동안 규슈에서 1,825km, 시코쿠에서 925km, 홋카이도에서 2,500km, 그리고 혼슈에서는 장장 6,520km를 달려 총 12,000km라는 긴 여정동안 신선한 일본과 여행의 자유로움을 이 책 <열도유랑 12,000 킬로미터>에 담았다.
저자가 선택한 곳은 자연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길. 국도며 산길, 정비되지 않은 시골길은 물론 해안도로, 고속도로 등 온갖 길을 따라가며 일본의 맨얼굴과 만난다. 홋카이도 시모키타반도의 유황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천이나 일본 3대 카스스트 지형으로 꼽히는 규슈의 히라오다이, 시코쿠카르스트, 혼슈 아키요시다이처럼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화산 지형이나 삼나무가 우거진 숲길, 바다 같은 거대한 비와호수, 기암절벽이 이어지는 해안도로 등 때 묻지 않은 자연은 안달복달하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자유를 최대한 만끽이라도 하려는 듯 대략적인 예상 루트만 짜고 세세한 장소는 정하지 않았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내키는 대로 다녔다. “어차피 어딜 가든 대부분 처음 가는 곳이었기에”라는 것이 이유다. 물론 숙소 예약도 하지 않았다. 예약 문화가 자리 잡힌 일본이라 숙소를 못 구할 뻔하기도 하고 저녁을 삼각김밥과 캔맥주로 때우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일정 덕에 더 여유로웠다고 자찬한다.
길에서 만난 인연들도 이야기거리다. 타국의 도로에서 한국인 라이더 H씨,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들었던 라이더하우스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 도쿄에서 출발해서 바이크 여행 중이라는 20대의 청년 등 보통의 여행에서라면 조우하기 힘든 만남이 저자가 달리고 달린 12,000킬로미터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열도유랑 12,000 킬로미터>의 재미는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은 생소한 바이크 투어링의 바이블을 보여주니 바이크를 타본 이들이라면 그 유혹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만화가인 저자의 직업대로 만화왕국 일본의 풍경들도 책에 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 아톰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데쓰카 오사무의 ‘불새’, 와쓰키 노부히로의 ‘바람의 검심’ 등 만화의 배경이 된 곳을 둘러보면서 들려주는 만화 이야기는 같은 만화인이기에 더욱 남다른 시선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바이크에 몸을 싣고 조금만 방향을 틀면 만나고 싶던 일본의 맨얼굴이 나타난다”고 했다. 유명한 카페 골목과 화려한 쇼핑센터에서 벗어나 화산재 날아드는 고원 도로를 달리고 삼나무 우거진 숲에서 호흡하는 여행을 통해 화려하지만 식상한 일본이 아닌 새롭고 순수한 일본의 모습을 발견했을 터이다. 여행에 바이크라는 만만치 않은 값비싼 아이템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그 유혹을 떨쳐내기 힘든 것은 모두 <열도유랑 12,000 킬로미터>탓이다.

 

ⓒ일본관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기사작성:2010.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