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엄마와 여고생 딸의 투닥투닥 도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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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모녀 도쿄헤매記>는 독특한 여행 에세이다. 여기에는 그 흔한 길 안내도 없고, 남들이 모르는 특이한 장소에 대한 소개도 없다. 대신 이 책에는 엄마와 딸이 함께한 괴롭고도 즐거운 여행의 일상이 있고, 여행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솔직담백하고 유머러스한 ‘만담’이 있다. 저자는 특유의 아줌마 문체로 배꼽 잡게 울리고 짠하게 웃기면서도, 가까운 이와의 여행이라면 무엇을 보고 어떤 경험을 하든지 여행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냥 동네 푼수 아줌마의 수다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은 도쿄에 가보았든 그렇지 않았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때로는 ‘쿡쿡’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때로는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글을 통해 여행의 쓴맛과 신맛, 짠맛과 단맛이 맛있게 버무려진 풍성한 에세이를 선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낭만과 허상으로 치장되지 않은 리얼한 도쿄가 생생히 드러난다.
이 책 <길치모녀 도쿄헤매記>는 일본문학 번역가로 유명한 권남희의 두 번째 에세이다. 전작 <번역에 살고 죽고>가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였다면, 이번 책은 좀 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마로서 딸과의 관계라는 보편적 테마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마감에 쫓기는 프리랜서 엄마와, 학교생활과 학원생활만으로도 너무나 바쁜 고등학생 딸이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여행이라는 계기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엄마와 딸이 함께 떠나는 도쿄 여행이 당연히 즐겁기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지의 생활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일상이기 때문에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오히려 세대 차이와 관심사의 차이 때문에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는 것이 진짜 현실의 모습에 가깝다. 도쿄와 서울의 거리만큼이나 엄마와 딸 사이에는 메우기 쉽지 않은 마음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와세다대, 도쿄대, 게이오대로 이어지는 대학 순례를 하고 싶어 계획에 넣었지만, 딸에게는 그런 순례가 그저 재미없는 일로만 느껴질 뿐이다. 반대로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딸에게는 즐겁지만, 엄마에게는 그저 무섭기만 한 일일 뿐이다. 돈을 얼마나 덜 쓰고 더 쓸 것인지를 놓고서도 엄마와 딸의 아옹다옹은 계속된다. 이런 의견 차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각자 따로 여행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재미있게 다닌 여행도 투닥거리며 다닌 여행도 모두 아름다운 기억, 즐거운 추억이 된다는 것이 <길치모녀 도쿄헤매記>가 던지는 주제다. 짜증이 나고 후회가 되기도 하는 기억조차 나중에는 연신 키득키득 웃음이 나는 행복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은 한편으로 괴롭고 한편으로 즐겁지만, 그래도 언제든 다시 떠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은 사실상 그 어디에도 특이한 장소는 없고 모두 잘 알려진 곳들이다. 평범한 곳에만 골라간 것이 길치모녀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분명 <길치모녀 도쿄헤매記>는 특별한 모녀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느 동네 아줌마의 수다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녀의 평범한 여행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이 책은 딸을 둔 엄마라면,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감수성을 건드린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투, 불만과 찬사가 교차하는 꾸밈없는 감상, 엄마와 딸 사이의 격의 없는 대화 등을 통해 우리는 길치모녀의 인간적인 매력뿐 아니라 여정의 생생함까지 깊이 엿볼 수 있다.
“각설하고, 이 책은 도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치님들을 위해 썼다. 부디 여행을 떠나는 길치들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중략) 나 같은 길치는 하늘이 내려준 길치여서, 보통 사람이 나처럼 헤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겁먹지 말고 길을 떠나시기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길치모녀 도쿄헤매記> 이제 막 일본으로 설레는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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