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자유여행시리즈:이와테현編>
“세계유산 히라이즈미 신성함에 유유자적 뱃놀이 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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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동일본대지진의 상흔에 신음하던 2011년 6월, 도호쿠지방 이와테현에 불교유적지 ‘히라이즈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동일본대지진이 있으지 겨우 3달만에 찾아온 낭보는 힘든 시련 속 작은 기쁨이자 용기가 되었다. 천 년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던 정토불교사상이, 다시 천 년의 세월을 지나 2011년의 도호쿠에 희망을 가져다 준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무대, 세계유산 히라이즈미가 그 무대다. 
| 이상직 기자 news@japanpr.com  

히라이즈미(平泉)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 헤이안시대 말기, 당시 도호쿠의 절대 권력자로 자리했던 후지와라 가문이 이룬 정토불교사상이 꽃피운 땅이라 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전쟁으로 신음하던 헤이안시대. 오슈(지금의 도호쿠)를 무대로 정토불교가 말하는 평화로운 이상향을 만들고 싶었던 오슈 후지와라는 히라이즈미의 땅에서 교토를 뛰어넘는 번성한 불교문화를 창궐시켰고, 그렇게 히라이즈미는 오슈의 문화적 거점이 되었다.  
하지만 번영의 시간은 길지 못했다. 후지와라가 이룬 오슈의 독자적인 문화와 권력에 위협을 느낀 가마쿠라막부의 권력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오슈에 출병하여 후지와라 가문을 멸족시키고 만 것이다. 때는 서기 1189년. 이상향을 실현하고자 했던 후지와라 가문의 정토불교가 이제 겨우 100년을 막 넘긴 때였다.  
히라이즈미의 정수라 꼽히는 정토사상과 만날 수 있는 곳은 단연 모츠지(毛越寺)절이다. 물론 지금은 재건한 모츠지절 본당과 조교도당, 그리고 거대한 오이즈미가이케 연못 이외에는 현존하는 건물은 없다. 하지만 정토신앙을 근간으로 일본 고유의 독자적인 정원양식을 만들어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정토불교의 본향인 만큼 터만 남았다하여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거엔 당탑만도 40개에 이르고 수도승들이 참선하는 선방(禪房)은 500개를 넘어섰다고 전해지지만, 히라이즈미 정토불교의 중심에 와서 연못의 흔적 뒤로 1000년 전 거대한 가람을 상상만으로 되새겨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히라이즈미의 또 다른 유적지인 추손지(中尊寺)절은 볼거리가 풍성해 그 아쉬움이 덜하다. 벌판에 가까운 모츠지절과 달리 추손지절은 옛 히라이즈미의 명소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복원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값을 기대하는 이방인의 기대치에 한껏 부응한다.
추손지절이 가진 의미도 남다르다. 오슈에서 발발한 두 번의 큰 전투로 가족 대부분을 잃은 후지와라는 적군이든 아군이든, 사람이든 짐승이든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는 뜻을 서원(誓願)하며 추손지절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후지와라가 히라이즈미에 정토사상을 토대로 극락왕생의 이상향을 만들고자 했던 때도 이때부터였을지 모른다.  
추손지절 내에 자리한 후지와라가 세운 현존하는 유일의 건조물이자 국보 1호인 곤지키도(金色堂)도가 단연 볼거리다. 추손지절로 향하는 참배길 츠키미자카 언덕을 한참 올라가 오른편에 본당을 지나 참배길의 끝에 도달하면 삼나무 숲속에 고이 숨겨진 곤지키도와 마주할 수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나 지붕부터 바닥까지 빼곡히 치장된 화려한 금빛의 금박들이다. 왕좌를 연상시키는 4개의 기둥으로 지탱하는 단 위에는 불상들이, 그 단의 아래에선 정토불교를 일으킨 오슈의 권력자였단 후지와라 가문 3대의 미이라와 4대째였던 야스히라의 머리가 여전히 잠들어 있다.
건물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1000년의 세월이 지난 만큼 일정부분 보수공사는 거쳤다. 썩어나간 기둥은 떼어내고, 남루해진 금박은 가나자와에서 최고급 금박을 가져와 옛 방식 그대로 그 자리에 정성스레 입혔다. 참고로 복원에 사용된 금박의 가격은 1960년대 일본 화폐가치로 약 1억엔(한화 약 14억원)이나 들었다. 
곤지키도 주변으로도 당시 번영했단 히라이즈미의 모습과 만날 수 있는 가람들이 줄을 잇는다. 추손지절의 경전을 안치했던 경장(経蔵)을 비롯해, 1853년 재건한 하쿠산신사와 일본 전통예능인 노(能)가 펼쳐진 노 야외무대, 그리고 곤지키도 바로 왼편에 자리한 보물관에선 히라이즈미 유적조사 당시 곤지키도에서 발굴된 부장품과 유물 등이 전시되어 번성했던 오슈의 정토불교의 면면을 가까이서 확인할 수 있다. 
보다 깊이 오슈 후지와라 가문과 히라이즈미의 역사를 탐하고픈 이들이라면 모츠지절과 추손지절 중간에 자리한 ‘히라이즈미 문화유산센터’가 답이 된다. 히라이즈미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방대한 분량의 판넬과 영상자료, 그리고 당시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어 설명이 완벽하지 않은 것이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다.

절경 게이비케이서 유유자적 뱃놀이 일품이네
이와테의 역사를 즐겼으니, 이와테의 절경도 빠질 수 있으랴. 발길이 닿은 곳은 일본 백경(日本白景)으로 이름 높은 게이비케이(猊鼻渓). 사테츠가와(砂鉄川)라 불리우는 작은 강이 석회암 지반을 오랜 세월 침식시켜가며 만든 약 2km에 이르는 기암절벽으로, 절벽의 높이는 낮은 것이 60m, 높은 것은 100m나 된다. 신이 큰 바위산을 강의 물줄기로 단칼에 베어 두 조각으로 나누어 놓은 형상이라 하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다.  
기암절벽이 있고 흐르는 강이 있으니 즐기는 것은 역시나 뱃놀이다. 배는 센토우(船頭)라고 불리우는 뱃사공의 인력으로 움직이는 ‘후나쿠다리’로, 1m가 되지 않는 수심위에 배를 올리고 노로 물을 젓는 옛 방식 그대로를 고수한 이와테만의 즐길거리다.  
10여분을 배를 타고 올라가자 서서히 게이비케이의 절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암절벽의 풍광은 흡사 병풍을 연상시킨다. 수묵산수화가 그려진 큼직한 8족 병풍을 좌우로 주욱 늘어뜨린 것 마냥 회색빛 석회암 단애절벽 위로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까만 가지들이 솟아 말 그대로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수묵화의 실사판을 보란듯이 내어 보인다. 
상류의 끝에 도착해선 게이비케이에서 가장 거대한 절벽인 높이 124m의 다이게이기간 절벽으로 향하는 산책로도 이어진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 버티고 있는 절벽도 시선을 끌지만 정작 여행객들의 관심은 ‘운다마나게’에 모두 쏠려있다. 우리말로 풀면 ‘소원구슬 던지기’정도로 풀이되는데, 점토로 만든 구슬을 절벽 한 켠에 뚫린 구멍에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박한 이벤트다. 점토구슬은 총 5가지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운(運), 장수를 기리는 수(壽), 복을 부르는 복(福), 인연을 만들고 깊게 하는 연(緣), 바램을 이루어주는 원(願)으로, 5개 소원을 사는데 단 돈 100엔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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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01)▲삼나무 숲 속에 자리한 곤지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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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02)▲게이비케이 계곡 후나쿠다리(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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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03)▲게이비케이 명물인 ‘소원구슬 던지기’

<여행정보>
아시아나항공이 도호쿠 관문인 센다이공항으로 주 4회 정기취항 중이다. 이와테현 히라이즈미까지는 JR도호쿠혼센(東北本線) 히라이즈미역이 있어 찾기 편하고, 주변 유적지로는 10분~15분 이내로 도보 이동이 가능해 개인여행자도 큰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다. 게이비케이 후나쿠다리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게이비케이관광센터(www.geibikei.co.jp)까지는 히라이즈미에서 자동차로 약 30분이면 찾을 수 있다. | www.japan-iwat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