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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도쿄가 내어주는 도쿄 여행 인문학”

일본 도쿄는 쫓기듯 전철 한 귀퉁이에 끼어 밀려가고 밀려오고, 홀로 공원에 앉아 도시락을 먹거나 퇴근 후 집 근처 주점 혼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휘청대며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현대의 뻔한 도시이지만, 그 이면에 일상에서 유유자적하는 숨겨진 매력 또한 동시에 가진 도시다. 
저자는 이런 도쿄라는 지명에 ‘적’이라는 접미사를 부여한다. ‘적’이라는 말은 영어 ‘tic’의 번역어로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 이후 쓰였으며, 한국어로는 ‘스럽다’로 번역된다. 저자는 바로 이 접미사 ‘적’에 주목한다. 
<도쿄적 일상>의 저자는 일상의 공간 서울에서 끝내 누릴 수 없었던 유유자적한 산책의 공간을 찾아 도쿄로 가서 ‘도쿄적’이라는 의무부여를 통해 일본 도쿄의 면면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저자가 도쿄를 선택한 이유도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저자는 퇴근 후 동네를 산책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 자족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길 양 옆 빼곡하게 주차된 차량과 그 사이를 조심성 없이 지나는 운전자, 온 거리가 흡연 장소고 골목 모퉁이마다 배려 없이 버려진 쓰레기가 지뢰밭처럼 널려 있는 서울은 자족은 가능한데, 유유자적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유유자적의 공간을 찾아가 보기로 했고, 자신이 사는 공간, 그것을 둘러싼 환경, 무엇보다 그 하부에 관해 이야기를 찾아가다 발견한 곳이 도쿄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시대의 ‘도쿄적’ 도쿄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점은 10년의 치열한 산책 끝에 이루어진, 그리고 여행 매거진 브릭스에서의 집필을 통해 수년 간 시도해 온 여행 인문학의 결과다. 
책 <도쿄적 일상>은 묻는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삶과 관계없는 정보들로 당신의 여행을 채우려고 하는가라고 말이다. 낯선 길, 낯선 사람들 속 이방인이 되는 두려움을 내색 않고 이국의 사람들과 마주앉아 유유자적 시간을 흘려보낼 용의는 없는가라고. 주변 사람들의 여행담과 어차피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맛집 정보에 당신의 산책과 사색의 시간은 도둑맞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책은 몇 안 되는 선택지만을 내어주는 가이드북이나, 내 감성을 이해하라는 강요에 가까운 에세이와는 그 선을 철저히 달리한다. 총 11장에 걸쳐 도쿄를 투영하는 저자의 치열한 인문학적 분석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도쿄디즈니랜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통해 소비와 가족문화를 이야기하고,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 <은하철도의 밤>을 통해 가장 일본다웠던 쇼와시대의 본질에 접근하며, 1954년에 만들어진 영화 <고지라>에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중첩시키기도 한다. 또 바벨탑과 에펠탑의 기원을 통해 도쿄의 상징으로 자리한 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의 존재 의의도 훑어본다. 자칫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각 장마다 저자의 여정과 교차시켜 전개되기에 여느 캐주얼한 에세이 이상 흡입력을 가진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말버릇처럼 말한다. 여행은 삶의 쉼표, 휴식이며, 결국 일상으로의 안전한 회귀를 위한 일시적 낭만 또는 일탈이라고. 그러나 이러한 말은 어디까지나 돌아갈 곳이 정해진 사람에게만 한정된 말이다. 어느 건물 밖, 또는 집 밖으로 내몰리는 현실 속에서 여행은 더 이상 휴식이나 성찰이 아닌 불안한 생존의 모습으로 우리를 자꾸 찌른다. 어쩌면 여행은 일상을 통째로 내던져야만 닿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의 생존 자체가 통째로 여행길에 내던져진 것일 수도 있다. 삶에 대한 은유로서의 여행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 <도쿄적 일상>이 더없이 어울리는 이유다. | 이주호 저 / 브릭스